오래된 텍스트 앞에 설 때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저자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텍스트를 탄생시킨 거대한 시대의 구조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지난번 ‘지성사’에 대한 탐구에 이어, 이번에는 텍스트의 의미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즉 의미의 소재(所在地)를 묻는 세 가지 강력한 렌즈를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저자의 의도에 집중하는 ‘케임브리지 학파’, 그 저자를 넘어선 구조를 파헤치는 ‘미셸 푸코’, 그리고 인간과 신의 이중주를 탐색하는 ‘성경해석학’이 그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목소리 복원하기: 케임브리지 학파
케임브리지 학파는 ‘의미는 저자의 의도 속에 있다’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이들에게 텍스트는 단순히 기록된 글자가 아닙니다. 저자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수행한 하나의 ‘언어 행위(speech act)’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what the author was doing)?”
이 관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마키아벨리 연구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만났던 쿠엔틴 스키너는 『군주론』을 당시 유행하던 ‘군주를 위한 조언서’들의 맥락 속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러자 ‘악마의 교사’로 불리던 마키아벨리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기존의 도덕적 통념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전복시키는 언어 행위를 통해, 냉혹한 현실에서 국가를 지키는 법을 말하는 ‘자유의 이론가’로 재탄생했습니다. 이처럼 케임브리지 학파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복원합니다.

시대를 지배하는 구조의 힘: 미셸 푸코
한편 미셸 푸코는 정반대 방향에서 의미의 소재를 찾습니다. 그는 개별 저자의 의도를 넘어, 특정 시대에 무엇이 ‘말해질 수 있고’, ‘생각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의 총체, 즉 ‘에피스테메(επιστήμη)’라는 구조에 주목합니다. 이 에피스테메는 마치 언어의 문법처럼,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사유를 지배하는 거대한 틀입니다. 따라서 푸코에게 의미의 소재는 저자의 머릿속이 아니라, 바로 이 담론의 장 그 자체입니다.
푸코는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며, 저자는 의미의 창조주가 아니라 특정 담론이 드러나는 ‘기능’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가 ‘무엇을 의도했는가’가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시대가 ‘어떻게 그런 사유를 가능하게 했는가’입니다. 이처럼 푸코의 계보학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진리나 제도가 사실은 특정 권력 투쟁의 산물임을 폭로하는 ‘현재의 역사’를 씁니다.
- 케임브리지 학파: 저자 → 역사 (저자는 자신의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가는 ‘원인’)
- 미셸 푸코: 역사 → 저자 (저자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구조가 드러나는 ‘결과물’ 또는 ‘징후’)
인간과 신의 이중주: 성경해석학
이제 세 번째 렌즈로 성경을 살펴봅시다. 갑자기 웬 성경이냐 하실 수 있겠지만 앞서 다룬 텍스트들과 달리, 성경은 그 자체로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집니다. 성경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작은 도서관에 가깝습니다. 수십 명의 저자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역사, 시, 율법,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텍스트이기에,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성경해석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발전했습니다.
성경해석학은 ‘의미의 소재’에 대해 독특한 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중 저자성(dual authorship)’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에 두 종류의 저자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유한 개성과 문체를 지닌 ‘인간 저자’가 존재하고, 동시에 그 모든 과정을 주관하고 영감을 불어넣은 궁극적인 ‘신적 저자’ 또한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특별한 전제 때문에 성경해석학의 탐구는 여러 겹의 층을 가지는 다층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 역사-문법적 방법: 케임브리지 학파처럼, 인간 저자가 원래 독자에게 의도한 역사적 의미를 철저히 탐구합니다.
- 정경적 접근: 개별 텍스트를 성경 전체라는 통일된 구조 속에서 이해합니다.
- 구속사적 해석: 성경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라는 거대한 서사(metanarrative)로 읽어냅니다.
이처럼 성경해석학은 저자의 의도와 거대 구조 사이의 긴장을 끌어안으며, 텍스트 이해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길을 모색합니다.
비교 분석표
세 가지 접근법의 핵심적인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좌표축 | 케임브리지 학파 | 미셸 푸코 | 성경해석학 |
의미의 소재 | 저자의 의도적 ‘언어 행위’ | 익명의 ‘담론적 규칙’과 권력 | 신적-인간적 저자의 이중적 의도 |
저자의 역할 | 능동적 행위자 | 담론의 효과이자 기능 | 신적 저자의 도구이자 2차 저자 |
해석의 목표 | 과거 행위에 대한 역사적 이해 | 현재에 대한 비판적 해체 | 신앙 공동체의 현재적 적용과 변화 |
거대 서사 | 의심하고 역사화함 | 근본적으로 불신함 | 긍정하고 의존함 |
의미의 소재, 세 가지 렌즈, 하나의 통합적 시선
결국 의미의 소재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탐구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닌, 성숙한 독서를 위한 통합적 시각을 요구합니다.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적 엄밀함으로 텍스트의 뿌리를 단단히 잡고, 푸코의 비판적 시선으로 그 이면에 숨은 권력을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해석학처럼, 텍스트가 더 큰 서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때 우리의 해석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텍스트 이해가 단순히 지적 유희를 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지적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진정한 지적 자유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