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대한 폭포나 광활한 사막,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마주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혹은 미술관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추상화를 마주했을 때는 어떤가요? 그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경외감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전율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 미학에서는 바로 이 감정을 ‘숭고(崇高, the sublime)’라고 부릅니다.
‘숭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화롭고 편안한 ‘미(美, beauty)’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때로 불협화음이나 공포, 고통 같은 부정적 감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쾌감을 이끌어내는, 압도적 경험을 다루는 숭고 미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무한한 세계로 이끄는 숭고 미학의 매력적인 세계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1. 자연의 숭고: 버크가 말한 ‘즐거운 공포’
숭고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철학의 무대로 끌어올린 인물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그는 숭고함의 근원을 ‘공포’에서 찾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의 자기보존 본능이 자극될 때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가, 안전한 거리에서 그것을 바라볼 때 ‘즐거운 공포(delightful horror)’라는 독특한 쾌감으로 전환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의 작품에서 이러한 ‘자연적 숭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숭고는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 숭고미의 독특한 점은 바로 이 단독자로서의 자아와의 만남에 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간은 예외 없이 혼자다…. 자아의 해방은 이런 한계 체험 속에서 일어난다.”
문광훈 교수의 분석처럼, 컨스터블의 풍경화 앞에 선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 잊고 있던 ‘홀로 선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느끼는 왜소함과 공포는,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이를 사유하는’ 정신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며 심오한 실존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이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고 벌거벗은 실존을 대면하게 하는 고독하고도 성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내면으로 향한 숭고 미학: 칸트와 마크 로스코
버크가 숭고의 근원을 외부 대상(자연)에서 찾았다면, 이마누엘 칸트는 그 무대를 주체의 ‘내면’으로 옮겨오는 위대한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칸트에게 숭고함이란, 자연의 무한한 크기나 힘 앞에서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은 한계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성으로 사유할 수 있는 우리 정신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20세기 추상미술, 특히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로스코는 자연의 재현을 완전히 포기하고 거대한 ‘색면(color field)’ 자체를 통해 관객에게 숭고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로스코가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어떻게’라는 형식적 문제보다 ‘무엇을’이라는 내용적 측면이었다…. 그 결과가 ‘숭고’이다. 숭고는 우리의 지각 범위를 넘어서는 넓은 범위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게 되는 불편함, 두려움, 공포, 충격이자 인간을 압도하는 수학적 크기나 역학적 힘이다.”
로스코는 관객이 자신의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익숙한 형태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색의 공간 안으로 완전히 몰입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칸트가 말한 ‘수학적 숭고’, 즉 너무 거대해서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상상력이 패배하는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관객은 재현된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 비극, 황홀, 운명과 같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과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로스코 채플’이라는 전용 공간이 보여주듯, 그의 예술은 종교적 성스러움을 대체하여 내면 성찰을 위한 현대의 예배당을 창조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여기서 숭고는 초월적 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심오한 감정 그 자체를 향하는 경험이 됩니다.
3. 숭고 미학의 심화: 헤겔과 리오타르의 관점
숭고의 개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헤겔과 리오타르 같은 철학자들을 통해 더욱 깊어졌습니다.
- 헤겔(G.W.F. Hegel): 헤겔은 숭고를 보편적 감정이 아닌, 예술의 특정 ‘역사적 단계’로 보았습니다. 무한한 정신(이념)을 유한한 형식으로 담으려는 시도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그 부적합함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숭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리오타르는 칸트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현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사명을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로스코나 바넷 뉴먼의 작품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감각 체계가 붕괴되는 고통과 그 너머를 감지하는 쾌락이 뒤섞인 ‘숭고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이를 표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 게오르크 W. F. 헤겔 (G.W.F. Hegel) |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J-F. Lyotard) |
---|---|---|---|
핵심 개념 | 감각적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이성)의 우월성에 대한 주관적 감정 | 정신(이념)이 감각적 형식을 압도하여, 형식이 내용을 담기에 부적합함이 드러나는 예술의 역사적 단계 |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 재현의 불가능성을 증언하는 아방가르드의 사명 |
숭고의 소재지 | 주체의 마음 속 | 예술 작품의 기호-의미 관계 | 작품과 관객 사이의 사건 |
핵심 감정 | 불쾌(상상력의 패배)에서 유래하는 쾌(이성의 승리) | 정신의 무한함에 대한 경외와 유한한 형식의 부적절함에 대한 인식 | 고통(감각의 박탈)과 쾌락(사유 가능한 것의 존재를 암시)의 혼합 |
예술과의 관계 | 주로 자연에서 발견되나, 예술도 숭고한 감정을 유발 가능 | ‘상징적 예술 형식’이라는 특정 시대의 예술에 국한됨 | 모던/아방가르드 예술의 본질적 사명 |
압도의 경험은 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가
컨스터블의 풍경화에서 로스코의 추상화까지, 숭고의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그 근저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지각 능력이 ‘실패’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명명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소비되는 아름다움과 즉각적인 만족감이 넘쳐나는 시대에, 숭고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한계와 대면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바로 그 압도적인 것, 표현 불가능한 것, 두려운 것과의 대결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가 지닌 광대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숭고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드는 동시에, 무한한 사유와 감정의 능력을 지닌 유한한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을 깨닫게 하는 심오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서 ‘숭고함’을 느껴보셨나요?